대극.

한눈에 봐도 개성과 철학이 뚜렷하게 드러나있는, 그러나 동시에 현실성과 실용성이 현저히 떨어지는 무기.
근현대 일본의 역사와 그 속에 담겨있는 모순적인 철학들을 알고 보면, 대극은 사사키 신겐이라는 인물의 정체성을 완벽하게 담아내는 서사적 장치다.


신겐은 그야말로 근현대 일본 그 자체를 대변하는 인물이며, 캐슬 작중에서도 어쩌면 유우성의 서사를 이길지도 모르는 완벽한 캐릭터 디자인을 가진 인물.

이번 편은 일본 근대사의 포문을 열어젖힌 메이지 유신을 통해, 왜 신겐이라는 인물이 매력적이지만 패배했는지를 분석해보자.
천하를 평정하다, 센고쿠 시대를 끝낸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에도 막부

전편에서 분석해본 센고쿠 시대를 통해 우리는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어떻게 천하인이 되어 열도를 평정했는지를 이해했다.
야쿠자 쪽 인물들 + 센고쿠 시대 분석도 업그레이드 후 재 업로드 될 예정이니 조금만 기다리시라.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센고쿠 시대 최후의 승자 정이대장군, 즉 쇼군의 자리에 올랐음에도 불구하고 결코 빈틈을 보이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에야스의 꿈은 일본의 평화가 자신이 살아있는 동안만 반짝 가고 끝나는게 아니라, 대대로 도쿠가와 가문의 후계자가 에도 막부의 수장으로 일본을 태평성대의 황금기로 이끄는 것이었기에.
성을 세우는 창업군주가 되는것도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성을 지켜내는 수성군주는 창업보다 몇배는 더 힘든 과정들을 이겨내야 한다.
당장 세계에 백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기업들이 생각보다 얼마나 적은지를 보면 그 어려움이 더욱 실감나게 느껴진다.

에도 막부의 수립 이후, 이에야스는 절정에 이른 자신의 용인술로 열도 전역에 퍼져 있는 다이묘들의 번 (제후국, 각 지방 다이묘가 다스리는 스스로의 영지) 들을 컨트롤하는 과정에 들어간다.
내가 일본에 갈때마다 비행기에서 읽는 ‘도쿠가와 이에야스 인간경영’이라는 책이 있는데, 정치, 경영, 사람을 더 잘 다루는 기술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라면 꼭 3번 이상 읽는 걸 추천드린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자신의 용인술을 아예 에도 막부내에 시스템화 시켜버렸는데, 그 원칙을 ‘분단 경영’ 이라는 철학으로 설명할 수 있다.
쉽게 말해, 부하들에게 꽃과 열매를 절대 같이 주지 않는 것.
여기서 꽃은 권력을, 열매는 수입을 뜻한다.
이에야스는 일본 열도의 다이묘들을 ‘후다이 다이묘’와 ‘도자마 다이묘’ 두 그룹으로 나누었는데, 후다이 다이묘들은 원래 전국시대 시절부터 도쿠가와 가문에 충성을 다했던 원년멤버들.
그리고 도자마 다이묘들은 원래 노부나가나 히데요시를 받들고 있다가 끈이 떨어져서 어쩔 수 없이 도쿠가와에게 충성을 다하게 된 다이묘들을 말한다.

도쿠가와는 원년멤버들을 막부의 요직에 앉히고 막강한 행정 권력을 주는 반면, 넓은 영지나 수입은 절대 주지 않았다.
그리고 도자마 다이묘들에게는 꽤 만족스러운 생활을 누릴 수 있을 만큼의 봉토를 하사했으나, 절대로 막부의 요직에 앉혀주지 않았다.
한 마디로 충신들에게는 막강한 힘을 줄테니 돈까지는 바라지 말고, 나머지는 섭섭하지 않게 주머니를 불려줄테니 감히 막부의 권위에 도전할 생각은 꿈도 꾸지 말라는 이에야스의 무언의 경고인 셈.
추후에 이 책 리뷰와 함께 에도 막부 초창기 이에야스의 통치 분석도 할거니 이것 역시 조금만 기다려달라.
미국의 침략을 받다, 쿠로후네 사건.
이에야스가 견고히 쌓아올린 시스템을 통해, 에도 막부는 이에야스 사망 이후에도 250년간 그 체제를 유지하며 일본은 경제적, 제도적, 문화적 전성기를 맞이했다.
그런데 1853년, 현재의 요코하마 근처 우라가에 갑자기 성조기가 나부끼는 쿠로후네, 즉 흑선(黒船)이 등장한다.

바로 미국의 매튜 페리 제독이 USS 서스쿼해나, USS 미시시피, USS 새러토가, 그리고 USS 플리머스 4척의 군함들을 이끌고 일본을 개항시키기 위해 태평양을 건너 열도에 도착한 것.
페리 제독은 유사시에는 지금의 오키나와, 류큐 왕국을 무력으로 점령해도 좋다 라는 명령을 받고 도쿄로 들어가는 에도 만의 해운 물류를 마비시킨다.
에도 막부는 미국의 압도적인 해군력에 저항할 수 있는 수단이 없었으며, 그대로 미국에 계속 뻐팅기다가는 도쿄에 식량과 물자를 들여오지 못해서 에도의 수많은 사람들이 굶어죽을 위기에 처했다.

압도적인 군사력의 차이를 객기로 해결할 수 없다고 판단, 막부는 결국 천황과 다이묘들의 동의를 구하지 않은 채 개항 조약에 사인을 해버리고 만다.
그리고 이 결정은 에도 막부를 끝장내버린 최악의 자살골이 되는데…
막부의 몰락, 그리고 메이지 유신.
아까 도자마 다이묘들은 수입과 영토는 많이 주어졌지만 중앙정치에는 절대 입성할 수 없었다는 걸 기억하는가?
사실 그동안 에도 막부에도 알게 모르게 불만이 속속들이 쌓이고 있었던 거다.
그 중에서 특히나 불만이 많았던 세력이 3개가 있는데,
세력 1 – 태평성대의 시작 이후 막부에게 버림받은 무사 계급

센고쿠 시대에는 무사 계급, 즉 사무라이들이 통치 체제의 중추 허리를 담당했다.
그 당시에는 모든 세력들이 무력을 기반으로 했기 때문에, 사무라이와 하타모토들이 굉장히 인정받는 사회 계급이었는데.
평화로운 시대에 접어들면서 할 줄 아는 건 전쟁밖에 모르는 무사계급은 뒷방으로 밀려나고, 오히려 행정과 제도적인 업무를 할 줄 아는 먹물들이 막부의 요직을 꿰차기 시작했다.
갑자기 변해버린 사회상과 설 자리가 점점 줄어드는 사무라이들은 당황하고, 또 자기들이 위상이 낮아질수록 역설적으로 본인들의 정체성에 과하게 집착하기 시작한다.
우리 사무라이들이 진짜 막부의 충신들이고, 우리의 위대한 천황께서 저 양키 양놈들에게 굴욕적으로 항복할 바에는 차라리 저항하다가 모조리 죽는게 진정한 일본의 철학이라는, 뭔가 인정받고 싶어서 뒤틀린 사무라이 사상에 집착하게 된다.

사무라이 계급의 몰락을 예술적으로 묘사한 또 다른 작품은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7인의 사무라이’라는 영화다.
꼭 한번 보는 걸 추천.
세력 2 – 도자마 다이묘들의 리더, 조슈 번과 사쓰마 번.

도자마 다이묘들 중에서도 가장 강력했던 두 세력은 일본 열도의 가장 서쪽에 자리했던 조슈 번과 사쓰마 번.


조슈 번은 모리 가문이 이끌고 있었으며, 사쓰마 번은 시마즈 가문이 이끌고 있었다.

참고로 모리 투자신탁의 이름 또한 정연이 관서의 조슈 번을 이끌던 모리 가문에서 따오지 않았나, 한번 추측해본다.
이 둘은 에도 막부에게 찍힌 도자마 다이묘들의 대표격들이었으며, 쩌리 취급을 받는게 당연히 열 받기도 하고, 어떻게 하면 자기들이 중앙 권력에 진출할 수 있을지 궁리했다.
미국이 군함들을 끌고 왔다고 해서 막부가 냅다 항복해렸다는 사실은, 어떻게 하면 막부를 타도 할 수 있을지 궁리하던 조슈 번과 사쓰마 번에게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명분이 되어버린거다.
세력 3 – 실질적 권력을 오랫동안 잃어버린 황실
사실 1100년 가마쿠라 막부를 시작으로, 일본의 황실은 완전히 얼굴마담, 바지사장으로 전락해버린 문화적 + 상징적 자리였다.

막부의 쇼군은 여전히 많은 국정에서 천황의 허락을 구했지만 그건 사실 체면만 살려주려는 쇼일 뿐.
천황의 입장에서는 자신을 그냥 도장 찍는 기계로만 생각하고 무시하는 쇼군과 막부에게 얼마나 자존심 상했을까.
전국시대 사무라이 정신에 집착하면서 본인들의 존재의미를 확인하려는 무사계급, 막부를 타도하는 것이 본인들이 일본의 중심 권력에 진출할 수 있는 기회인 도막파 (사쓰마 번, 조슈 번), 그리고 다시 한번 천황으로서의 권위를 누리고 싶은 황실.
막부에게 불만을 가진 이 3세력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고, 마침내 이 3세력이 연합한 도막파와 에도 막부 간의 전쟁, 1868년 보신전쟁 발발.

보신전쟁은 도막파의 승리로 끝나고 250년간 일본을 이끌던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에도 막부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사쓰마 번이 일본 해군, 조슈 번이 일본 육군의 전신이 되면서 본격적인 일본의 근대화, 메이지 유신이 시작된다.
근대화, 그리고 사무라이의 컨셉에 잡아먹힌 일본 제국주의
발 빠르게 서양의 문물들을 받아들이고, 또 이제 황실을 통해 완벽히 중앙 집권 체제가 된 일본은 눈부신 속도로 발전한다.



그런데 너무 빨리 잘 나가다 보니 갑자기 점점 뇌절을 하기 시작하는데, 바로 주변 이웃들인 조선과 중국, 그리고 러시아까지 침략하면서 본격적인 제국주의적, 군국주의적 야욕을 보이기 시작한 거다.

조선 뿐 아니라 만주, 거기에 러시아라는 대국까지 이겨먹은 일본은 점점 자신감이 과해지다 못해 컨셉에 잡아먹히기 시작한다.
사실 사쓰마 번과 조슈 번도 처음에는 본인들이 중앙 권력을 잡기 위해서 그동안 무시 받았던 무사계급을 이용했을 뿐이었는데, 본인들이 시작하는 매 전쟁마다 동아시아를 묵사발을 내는 수준의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면서 온 국가가 ‘사무라이 정신’이라고 하는 이상한 컨셉에 잡아먹히게 된다.
군국주의 일본에서 그렇게 입아프게 외쳐대던 사무라이 정신이 말도 안되고 웃긴 단순한 이유가 뭐냐면,
그건 바로 전국시대를 살던 진짜 사무라이들은 한번도 그런 사상을 가진 적이 없었다는 거다.

전국시대는 그야말로 야생, 매일매일 죽고 죽이는 아사리판이었기 때문에 배신, 모략, 협잡이 일상이었다.
죽거나 패배하더라도 싸워서 본인의 명예를 지킨다?
아주 웃기는 헛소리.
당장 전국시대 최후의 승리자 도쿠가와 이에야스부터가 미타카가하라 전투에서 다케다 군에게 패한 후 바지에 똥을 지리면서 도망갔다는 이야기가 있잖은가?
무슨 짓을 하던, 전국시대 사무라이들에게 가장 중요한건 ‘생존’이었다.

장수들이 패배했을때 할복했던 것도, 그렇게 해서 패배의 책임을 진다면 적장이 남은 가족, 부하, 그리고 영지 사람들의 목숨만은 살려주는 인센티브가 있어서 그렇게 했던 것이다.
사무라이 정신은 이렇게 지극히 현실적인 이유에서 기원하는 문화인데.
일본 군국주의자들은 승리의 이유가 모두 본인들의 낭만적인 사무라이 정신 덕분이며, 항복할 바에는 사무라이다운 최후로 할복하거나 반자이 돌격을 하라고 명령하는 광기에 이르게 된다.

그렇게 천지분간 못하고 깝치다가 진주만 폭격으로 완전히 꼭지가 돌아버린 미국한테 태양 두개를 쳐맞고 일본의 제국주의 야욕은 추한 최후를 맞이한다.
사사키 신겐은 왜 그렇게 사무라이 정신에 집착할까?
사사키 신겐은 작중에서 왜 그렇게 ‘사무라이 정신’에 집착하는 걸까?


이 역사를 알고 본다면 쉽게 이해가 가능하다.
이와시로 신스케의 야마구치구미가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만든 에도 막부와 닮아있다면, 사사키 신겐은 그의 후계자를 자처하는 만큼 에도 막부 이후의 일본 제국과 닮아있다.

신겐은 시작은 부라쿠민 출신, 일본 사회에서 극복할 수 없는 신분의 한계가 있다.
이는 사쓰마 번, 조슈 번 등 도자마 다이묘들이 도쿠가와 막부에게 찍혀서 날고 기어도 중앙 정치에 입성할 수 없는 태생적 한계와 그를 극복하기 위해 발버둥 치는 모습이랑 많이 닮아있다.


그리고 신겐은 야마구치구미 영입후 본인의 무력을 통해 점차 인정을 받으며 조직에서 올라가지만, 원로들과 조직의 중추들은 그의 출신 배경과 조직의 경영 방식을 아니꼽게 본다.
결국 본인의 존재를 조직내에서 인정받고 야마구치구미의 후계자가 될 명분을 구축하기 위해서 신겐은 사무라이 정신을 내세웠는데, 이는 김신에게 한 말을 봐도 신겐의 저의를 알 수 있다.

결국 신겐도 알고 있는거다, 아무리 무사도 정신 운운한들 사는 것과 승리하는 것 보다 더 중한 것은 없다는 걸.
본인도 머리로는 알지만, 태생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 내세운 ‘사무라이 정신’이라는 컨셉이 점점 그를 잡아먹는다.
일본 제국이 처음에는 권력을 잡기 위해서 사무라이 정신과 일본 전통주의를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추후 2차 대전까지 가는 와중 그 컨셉에 잡아먹혀서 패배한 것처럼.
신겐의 마지막 전투, 이성적인 수싸움과 태생적 열등감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정체성.
작중에서 현 시점까지 김신에게 패배한 리천, 구스타프, 그롤라, 마준영, (교류전의 류지학까지) 모두 하나같이 끝에 가서야 깨닫는 건,
김신의 엇박찌르기 기술을 어떻게 파훼할지 과하게 집착하다가 본인도 모른채 처음부터 김신의 심리전에 휘말렸다는 것.


1부에서 김신은 백도찬과의 전투를 통해 마침내 지고의 경지에 도달한다.
죽음을 앞둔 상황에서 과거와 미래 모두를 사념에서 없애고, 오로지 눈앞의 대상을 죽이는 데에만 오감의 집중을 몰입하는 것.
정연은 이런 연출을 통해 작중에서 세계 최정상급 강자들의 승부는 기술의 완성도나 피지컬의 차이가 아니라, 상대방의 마음에 미세한 동요를 만들어내는 심리전에 있다는걸 일관되게 설명해왔다.


신겐은 김신의 마지막 수를 군더더기 없이 완벽하게 읽어냈다.
이건 단판에 걸만한 게임이 아니라는 신겐의 판단이 정확하다.
김신은 시간에 쫓기고 있으니 당장 1분 안에 승부를 봐야하지만, 신겐은 굳이 김신의 페이스에 어울려줄 이유가 전혀 없다.


여기서 횡으로 깔아치든 대각선으로 내려치든, 아니 차라리 뒤로 더 빠지면서 전투를 길게 연장시키는 전략만 취했더라도 이 싸움은 신겐의 분명한 승리였다.
그런데 왜 굳이 굳이 더 빠지지 않고 여기서 승부를 보려할까?
자기는 감도를 올리기 위해 이미 반 송장 상태인 류지학이랑 싸우고, 또 컨디션을 최대한 보존한 상태로 김신과 싸우려 부하들을 고기방패로 던지기까지 했는데,




사무라이, 사무라이 입으로만 코스프레만 하던 자기 앞에, 식구들과 자기 스스로의 목숨을 단판에 걸어버린 진짜 사무라이 정신을 가진 김신을 만나버린거다.
승리할것이냐, 본인의 정체성과 명분을 지킬 것이냐.


여기에서 빠지면 자기가 평생 집착하던 사무라이 정신의 정체성은 뭐가 되나?
자기보다 강한 상대에게 살아남으려고 치졸하고 얍실하게 발버둥 치는 히데는 박쥐라고 그렇게 무시했으면서, 정작 내가 하는 짓은 뭐가 다른가?


유우성도 본인이 내뱉은 말을 지키지 못하고 내빼려다가, 그걸 스스로 깨닫고 더 이상 얻을게 없는 싸움에 감정적으로 임하는 것과 같다.

횡으로 깔아치면 이긴다는 본인의 수에도 확신을 가질 수가 없었던 이유는, 김신이 진짜 혼또 사무라이 정신은 이런거라는 걸 보여줬기에 정작 나는 진짜 사무라이가 맞나? 라는 의심이 들기 시작한거다.
이놈이야말로 진정 사무라이니, 내 생각이 틀린건가? 정말 옆으로 빠지는게 아니라 스트레이트로 들어오는 건가?


이 찰나의 의심이 신겐의 패인이며, 또한 신겐이 가지고 있는 모순적인 정체성에 대한 서사의 완성이다.
신겐이 굳이 굳이 대극이라는 무기 고집하는 이유 또한,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을 무언가에 집착하다가 결국 본질을 놓친 그의 모습을 대변한다.

사무라이와 그 정신을 과할 정도로 나타내는 대극. 하지만 현대전에서 승리하기 위한 최선의 선택은 아닌 무기.
그는 결국 명분과 스스로의 정체성에 집착하다 치욕스럽게 패배하고 말았다.
중요한 것은 명분이 아니라 승리였음에도.
한 인물 속에 일본의 근현대사를 거의 총망라한 수준이며, 다시 봐도 정연의 캐릭터 디자인에는 감탄만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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